작가 이지혜 초상

L’AiR Arts, 파리, 프랑스. 2025년 9월.

소개

나는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와 낯선 혹은 익숙한 환경 속에서 재료가 기억을 품고, 운반하고, 놓아주는 방식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회화, 조각, 설치, 도자, 유리, 꽃, 섬유, 발견된 사물, 바이오 기반 재료를 넘나들며, 재료를 단순한 기억의 그릇이 아니라 관객의 몸이 통과하고 감각하며 변화하는 조건으로 다룬다.

내 관심은 재료가 오브제를 넘어 하나의 환경이 되는 순간에 있다. 회화가 표면 밖으로 확장될 때, 조각이 방처럼 작동할 때, 꽃과 천, 냄새, 안료, 소리가 관객의 호흡과 걸음, 기억의 방식을 바꿀 때, 작업은 더 이상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내 작업은 종종 임시적이고 장소 반응적인 환경의 형태를 띠며, 그 안에서 기억은 이미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들어가고 통과하는 경험이 된다.

천연 안료와 홍조류 바인더로 물감을 만들고, 유리를 녹이고, 밀랍을 다루고, 전분 기반 바이오플라스틱을 요리하고, 꽃과 식물성 재료를 수집하며, 대안 사진의 화학적 과정을 통해 주변 환경을 기록하는 나의 실천은 얼어붙는 것, 녹아내리는 것, 부패하는 것, 그리고 변형되는 것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이다.

각 재료는 서로 다른 시간성을 지닌다. 바이오플라스틱 조각은 부패하고 지속되는 시간을 품으며, 시간이 지나며 휘어지고 갈라지고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통해 유동적인 인간 기억을 닮아간다. 실험 사진은 빛과 화학, 우연에 의해 각인된 찰나의 시간을 붙잡고, 그 위에 겹쳐지는 밀랍은 이미지와 기억, 드러남과 감춤 사이의 피부 같은 막이 된다. 유리는 순환적이면서도 얼어붙은 시간을 지닌다. 유리 속 공기방울은 제작 순간의 숨결을 간직한 아카이브이며, 단단하지만 열과 호흡, 압력에 의해 다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는다.

내 회화는 대지와 바다, 이동의 지도이다. 여행 중 직접 채집하거나 추출한 안료와 홍조류로 만든 천연 바인더를 사용해 색을 만들고, 그 색은 광물과 식물, 장소의 기억을 품는다. 표면에는 작업실 바닥의 흔적, 캔버스와 종이를 통과해 스며든 색, 밀랍의 피부, 침전된 질감,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남긴 제스처가 축적된다.

나는 작업실에서의 실천을 요리이자 의식, 물질 연구의 과정으로 접근한다. 역사적 바인더로 물감을 만들고, 지역 재료로 바이오플라스틱을 조리하며, 식물과 광물, 꽃과 밀랍, 유리와 섬유를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기억이 질감으로 형성되는 순간을 감각한다. 오악사카의 셈파수칠이 남기는 희미한 주황, 말라카이트의 오래된 녹색, 밀랍의 반투명한 막, 유리 속에 갇힌 숨, 유기물이 천천히 무너지는 시간은 모두 내 작업 안에서 물질적 기억이 된다.

내 작업은 우리가 품고, 놓아주고, 변형하는 이야기들의 임시적 아카이브이다.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료의 조건을 통해 관객이 기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냄새 맡고, 들어가고, 통과할 수 있는 감각적 환경을 만든다.

교육

이 실천의 연장으로 Material Memory Studio를 열었다. 재료 연구를 여럿이 함께 손으로 해보는 공간이다. 워크숍에서는 식물, 안료, 바인더, 밀랍, 섬유, 바이오 기반 재료를 개인적·집단적 기억의 매개로 탐구하며, 그것들을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장소와 시간, 변형의 살아있는 아카이브로 다룬다. 현재 보태니컬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작업과 전시, 기억을 품는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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